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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 너의 안녕부터 묻는다

인형처럼 웃거나 울지 않아도

by 오늘@내일 2023. 7. 20.

인형처럼 웃거나 울지 않아도  / 권순학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쌓여 있는 것이 집인데

돌아갈 수 없는 집

 

우리는 분명 길을 잃고 있어요

 

사이렌에 실려 가는 집

어둠 속 종횡무진 달리는 타이어

차선은 비명조차 잃고

 

펄럭이는 깃발처럼 중앙선 넘나드는 생각들

강물이 눈높이를 조금씩 낮출 때마다

아등바등 대며 끌려 나오는 생각

 

사이렌은 집에 돌아간 지 오래지만

1인 병실에 누워 방울방울 떨어지는 목숨

돌아갈 수 있어야 집이고 돌아가야 집인데

메마른 입만 낙엽처럼 쌓이는 집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그믐달은 절대 웃지 않지요

버스 정류장에 앉아 밤새 기다려도

떠난 막차는 마지막 정류장을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노선에 매달린 수많은 정류장을 불러도 대답 없는 것처럼

현재는 지나가는 미래

 

반쯤 피거나 활짝 핀 꽃 꺾어

흩어진 꽃송이를 다발로 묶는 것이 생일이라지요

쌓이면 이별 되는 것이 그것인데

생일마다 촛불을 불며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박수를 치며

희고 검은 건반으로 단조를 장조로 노래하는 우리

 

인형처럼 웃거나 울지 않아도

분명 길을 잃고 있어요

 

인형

 

시집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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