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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 너의 안녕부터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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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화면 바탕화면 / 권순학 하루에도 골백번 너를 찾지만 어르고 달랠수록 멀어지는 너 얼마나 굶었는지 알 수가 없어 먹긴 먹은 것 같은데 언제 먹었는지 가물가물해 눈빛 마주치면 사라지는 은총들 지금 그걸 받으면 주는 그 손길 마냥 기다려야만 하기에 그냥 이대로 이대로 있고 싶어 내겐 오직 너 하나뿐인데 이젠 네가 울어도 나도 너처럼 시집 중에서 2023. 3. 20.
화살, 과녁論 화살, 과녁論 / 권순학 화살은 단호하다 길도 등도 없는 막막한 허공에 직선 같은 곡선으로 곡선 같은 직선으로 일필휘지하는 그를 보라 꼬리 살랑살랑 흔들어 대며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가로막은 허공 뚫고 나아가는 그가 너럭바위에 제 몸 던져 엮은 빛으로 막힌 세상 뚫어 잇는 쇠 정 같지 않나 지나다보면 뒤통수치는 천둥 번개도 있을 수 있고 앞을 막는 비바람도 있을진대 흔들흔들 부들부들 떨면서도 방향 잃지 않는 그를 보라 그 눈, 눈의 독기 소리로 풀려 명중하지 못할지라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력으로 뒷짐 지고 참선 중인 붉은 과녁 향해 앞으로만 달리는 허공 속 한 점 화살은 단호하다 점점 더 단호해지는 화살 앞에서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제 몸 정중앙 내주는 과녁 화살보다 더 단호하다 시집 중에서 2023. 3. 20.
벽돌論 벽돌論 / 권순학 나는 몰랐다 응달에 박혀 밟히고 채이며 나뒹굴다가 네모로 찍혀 가마에 구워질 때만 해도 왜 그래야만 하는 줄 몰랐다 한여름, 아스콘 길가에 누워 기름 냄새 맡기 전에는 밟혀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고 발자국, 등지고 멀어지고 나서야 마주보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까마득한 머리 위, 대못 박힌 십자가 안아 보기 전에는 사철, 벽에 붙어 있다는 것이 희생인 줄 몰랐고 달려드는 비바람 맞아 보고 나서야 서로 기대고 산다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다 여드름 같은 모에 부딪쳐 울기도 금 가 시퍼런 날 세우기도 깨져 옆구리가 시리기도 했지만 멀쩡한 속, 더 아파하는 줄 나는 정말 몰랐다 활짝 핀 불꽃 속에 세웠던 각角 모두 내려놓고 바람 탄 학의 울음처럼 훨훨 날고 나서야 왜 그래야만 하는가 알.. 2023. 3. 20.
말의 무게 말의 무게 / 권순학 아이는 울어 말하지만 바구니는 무게로 말합니다 한 아름 되는 신생아실 바구니들 자다 깨다 합니다 끊어진 탯줄 울음으로 잇는 바구니 곁 우유병 문 바구니도 덩달아 울다가 엄마 젖 흠씬 물고 잠든 바구니 곁으로 자꾸만 기울어집니다 들려지지 않는 바구니엔 혈액형과 생시生時는 있어도 이름이 없습니다 몸무게에 입양入養을 합하면 저울 눈금 사라지기에 보호자 이름도 안 보입니다 입양, 그 말의 무게 가슴을 짓누릅니다 시집 중에서 2023. 3. 20.